지난 2001년 박찬욱 감독은 지인들과 모인 자리에서 "엄청난 한국 영화를 발견했다"며 그 내용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영화가 시작되면 담뱃가게를 하며 외롭게 사는 한 할아버지가 공원 벤치에 앉아 있다가 한 할머니를 만난다. 그렇게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은 동거에 들어간다. 70대가 넘은 두 사람은 마치 청춘 남녀처럼 뜨거운 섹스를 시작한다. 할아버지는 섹스가 끝나면 달력에 표시를 한다. 낮에 한 날은 '낮거리'라고 써놓기도 한다.
톱스타, 노출 불가. 같은 조건에 놓인 두 감독이 서로 비슷한 규모의 베드신을 찍었지만 어느 한 쪽은 뛰어난 베드신으로 남았고 어느 한 쪽은 허전한 느낌이었다. 이것은 꼭 '물리적 노출 수위'가 베드신의 퀄리티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증거다.
도발적인 무용가 안은미가 '섹스 안무'를 맡은 이 영화의 베드신들 속에서 당시 신인이던 오지호와 이지현은 제작진들의 의도를 잘 구현해냈다.
홍상수는 유명 배우들을 노출시켜 베드신을 찍는 경우가 많았다. 이은주, 예지원, 추상미, 성현아, 엄지원 등이 홍상수의 영화 속에서 베드신과 노출 연기를 했다. 하지만 홍상수의 베드신이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알려진 여배우들이 그동안 공개하지 않았던 신체 부위를 드러낸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중 본격적인 베드신이 나오는 영화는 <박쥐> 이전에 <복수는 나의 것>과 <올드보이>가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세 영화의 베드신 모두 여성 상위의 체위가 등장한다는 것과 이 모든 베드신이 영화 용어인 '포인트 오브 노 리턴'과 관련 있다는 점이다.
영화 속에서 2분밖에 되지 않는 정사신은 제법 길게 느껴진다. 그 긴 정사가 끝나고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눈다. 자신의 솜씨가 몇 점이나 되냐고 묻는 상우에게 여기자는 말한다. "침대에서 여자를 만족시킨 남자가 여자에게 하는 말이 뭔지 알아?" 상우가 "글쎄"라고 하자 여기자는 "Nothing"이라고 말한다.
격렬한 신음 소리 속에서 여자의 교성을 찾아보려 애써도 소용없다. 두 사람 모두 남자이기 때문이다. 2002년 개봉한 <로드무비>는 이렇게 과격한 장면으로 시작된다. 한국 최초의 본격 동성 정사 신이다. 역시 동성 정사 신이 화제가 됐던 영화들, <쌍화점> 보다는 무려 6년이나 먼저 만들어졌고 <브로크백 마운틴> 보다도 3년이 빠른 작품이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바로 이 동성 정사 신의 주인공이 <국제시장>의 천만 배우 황정민이라는 점이다.
공동 주택의 긴 복도를 걸어오는 여인. 멀리서 보면 어느 집에 들어가는지 알 수 없는 그곳에서 여인은 연인의 보금자리로 들어간다. 그리고 아무 설명 없이 시작되는 러브신. 선생님 풍의 정장 속에 숨겨져 있는 백색의 언더웨어가 노출되고 비음 섞인 여인의 탄성이 들려오면 이미 관객들은 침 삼키는 소리도 내지 못하고 영화 속에 녹아든다. 관객들은 두 사람의 격정적인 정사가 끝나고 나서야 '여주인공 보라가 지금 사랑을 나눈 상대 일범은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것이 영화 '해피 엔드'의 충격적인 오프닝 신이다.